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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노벨상 비하인드 스토리 인물편



최초로 노벨상을 거부한 ‘사르트르’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실존주의에 대해 쓴 소설 <구토>로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는 “노벨상으로 인해 나의 문학 활동이 외부적 영향을 받는 것이 싫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사르트르는 최초의 노벨상 수상 거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1958년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 1890~1960)는 
러시아혁명을 비판한 내용을 문제 삼은 소련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아 수상을 거부했다.
베트남 전 총리 레득토(Le Duc Tho, 1911~1990)는 베트남전쟁을 일으킨 
헨리 키신저와 1973년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이 결정되자 수상을 거절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 과학자 3명이 히틀러의 지시로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상을 거부한 이들의 상금은 노벨 기금으로 환수된다.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의외의 유명인’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 andhi, 1869~1948)는 무려 1937년부터 
다섯 차례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끝내 수상하지 못했다.
당시 동양인에게 상을 주는 것을 꺼리던 때인 데다, 노벨 위원회가 영국의 눈치를 봤기 때문.
실제로 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간디가 인도에서 우상화되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1989년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Dalai Lama, 본명 텐친 카초, 1935~)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면서 노벨 위원회는 “이 상에는 간디에 대한 경의도 들어 있다”고 언급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도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노벨 물리학상은 이론이 뒷받침되는 탄탄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즉 실험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스티븐 호킹의 빅뱅과 블랙홀 이론은 
관측하기조차 힘들어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수상하지 못한 ‘비운의 천재’
노벨상 규정에는 “죽은 사람은 수상 후보자로 지명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평생 연구와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죽음 때문에 수상하지 못한 이도 많다.
현대의 원소주기율표를 완성한 영국의 헨리 모즐리(Henry Moseley, 1887~1915)는 
물리학상 수상이 확실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사하는 바람에 수상하지 못했다.

나일론을 발명한 미국 화학자 윌리스 캐러더스(Wollace Carothers, 1896~1937)는 
우울증으로 자살하면서 노벨상을 놓쳤다.
우리나라 물리학자 이휘소(1935~1977)는 힉스 이론을 입증해 
물리학상 수상을 기대했으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물거품이 되었다.
2년 뒤 공동 연구자 스티븐 와인버그 교수가 수상하면서 
“이 상은 이휘소가 받아야 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역대 가장 파격적인 수상자는 ‘윈스턴 처칠’
최근 노벨상의 최대 이슈는 201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Bob Dylan, 1941~).
미국 포크록 가수인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자격이 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노벨상 역사를 통틀어 가장 의외의 수상자는
영국 총리 윈스턴 처(Winston Churchill, 1874~1965)이다.
1953년, 회고록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
그해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는 헤밍웨이였다.
처칠의 수상은 많은 논란을 낳았는데, ‘역사적이고 전기(傳記)적인 글에서 보인
탁월한 묘사와 고양된 인간의 가치를 옹호하는 빼어난 웅변술’이 수상 이유였다.


열두 번이나 후보에 거론된 프로이트
노벨상 수상자 선정 작업은 1년 전부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수여 기관들은 한 부문당 약 1000명씩 총 6000여명에게
후보자 추천을 요청하는 안내장을 보낸다.
각 분야의 학자들과 대학교 및 학술 단체 종사자에게 안내장을 발부하는데,
이들이 후보와 추천 이유를 서면으로 제출하면 성과를 검토해서 수상자를 결정하는 데 참고한다.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오스트리아의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추천장 때문에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그는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에 열두 번이나 거론될 정도로 수상이 유력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 비트겐슈타인 등 몇몇 학자들이 정신분석학이 비과학적이며
사기성이 있다고 평가해 추천장을 써주지 않은 것.
요즘에는 매년 10월이 되면 언론에서 노벨상 후보를 발표하는데,
이는 영국의 ‘래드브록스’라는 도박 사이트의 배당률에 따른 것일 뿐 공식적인 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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